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인식 (문단 편집) == 명칭 ==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부르는 'Korean War'의 번역된 명칭인 '''한국 전쟁''' 역시 국내에서 널리 사용된다. [[위키백과]]에서는 이 명칭을 쓰고 있다. 한국 전쟁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데에는 대한민국(ROK) 역사상 본토에서 치른 사실상 유일한 전쟁이라는 점, (표면적으로는) 두 'Korea' 간의 전쟁이었다는 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술적 명칭이라는 점 등의 이유가 존재한다. 반대측에서는 자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외국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현재 학술적으로는 '한국 전쟁' 이라는 표현이 "6.25 전쟁"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은 한국 전쟁 발발일을 강조하여 [[북한]]의 남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서방에서는 가끔씩 Korean war 말고도 The forgotten war(잊힌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가장 많은 미군 사상자가 난 전쟁인데도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묻혀 그리 알려진 전쟁이 아니기 때문. 물론 단순히 이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국내에선 '잊힌 전쟁'이란 단어와 그런 인식 자체에 반발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미국, 한국 양쪽 모두 많이 있다. 한국인들은 당연히 잊을래야 잊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전쟁이고, 순수히 미국 자국 내의 인식으로 비교해도 사실 한국전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막상 전쟁 자체의 규모보단 미국과 당시 서구 사회에 내적으로 불러온 여파가 컸던 베트남 전쟁 양대 산맥 사이에 끼여있어 주목을 상대적으로 좀 덜 받은 거지, 사실 미국사에서도 1812년 미영전쟁이니, 인디언 전쟁 와중 수많은 자잘한 개별적 충돌, 남북전쟁 직전 캔사스 유혈사태 (Bleeding Kansas), 냉전기 각종 대외개입 등 한국전쟁보다 훨씬 더 잊혀져 대중의 기억에 남지 않는 분쟁들도 많이 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전쟁은 비록 2차대전처럼 아예 미국의 세기를 열어재낀 전쟁도, 베트남 전쟁처럼 전쟁에 대한 찬반여론 갈등이 아예 미국 사회 전체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온 전쟁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전쟁은 [[https://www.va.gov/vetdata/docs/specialreports/kw2000.pdf|직,간접적으론 무려 7백만의 미군이 종군하고 5만명의 넘는 전사자가 나온]] 미국 입장에서도 큰 전쟁이었다. 애초에 '잊힌 전쟁'이라 불리면서 기억되는 것 자체가 그리 잊힌 전쟁은 아니었다는 역설이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국가적 입지는 커져가는데 남북한 대립, 한반도 분쟁은 여전히 국제적인 핫 이슈인 현대 세계적 추세가 지속될수록 한국전쟁에 대한 국제적 학술적 관심은 더더욱 커지면서 한때는 '잊힌 전쟁' 취급 받았다는 인식 자체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6.25 사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변'은 선전포고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육이오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올라와 있다. 옛날에는 [[남북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단어 자체가 1860년대 미국의 [[내전]]을 지칭하는 단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서인지 요즘은 잘 안 쓰이는 추세.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그들의 사관에서는 미국과 '남조선 괴뢰'의 '북침'을 막고 인민군이 오히려 남부를 역습해 미제의 압제에 고통받는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켰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프로파간다가 가득한 표현이라 한국에서는 이 표현이 통용되지 않는다.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르는 한국인이 있다면 [[종북주의자]]다. 한국의 우익단체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는 아예 북한의 정통성이 없음을 보다 강조하는 표현으로 '''김일성의 난'''이라는 표현을 쓴다. 더 나아가서는 [[김일성 가짜설]]에 의거해 '''김성주의 난'''이라고도 한다. [[1950년]]이 경인(庚寅)년임에 착안하여 경인년에 공산당이 일으킨 난이라는 뜻으로 '''경인공란(庚寅共亂)'''이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학술적으로 전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며, 학술 영역 외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외국에서야 한국이나 조선이나 모두 'Korea'로 칭해지니 상관없지만, 대한민국을 제외한 한자문화권에서는 남북한을 어우르는 명칭이 조선(朝鮮)이다. [[중국]]/[[베트남]]/[[일본]]에서는 '한(韓)'은 오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한정되는 개념에만 사용한다.[* 다만 중화민국(대만)의 경우 과거 장개석 정부의 반공정책에 따라 韓을 많이 쓰며, 홍콩은 대만의 영향을 받아 Korea의 뜻으로 한(韓)도 섞어 쓴다. 예를 들어 대만과 홍콩에서는 뉴스에서도 북한을 北韓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4/1947_Zhonghua_Minguo_Quantu.png/1218px-1947_Zhonghua_Minguo_Quantu.png|국부천대 이전인 1947년의 중화민국에서 제작된 지도]]에서도 한국이 韓國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대한', '한국'이라는 명칭을 밀지만, 북한은 스스로를 '조선'으로 밀고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 입장에선 수백 년 동안 존속한 '조선'이라는 지명이 더 익숙하고, 한국이라는 지명은 2차대전 후 자유주의를 표방하여 서방세계 진영에 선 현대국가로 탄생한 국가이기 때문에, 비하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하다. 따라서 한국에선 '한국 전쟁'이나 '6.25 전쟁' 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들에선 이 전쟁을 '''조선 전쟁(朝鮮戰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광동어]]에서는 조선전쟁이 아닌 '''한전(韓戰)'''이라고 부른다. 중국 측에서는 현재 보통 중립적으로 '''조선전쟁(朝鲜战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는 표현도 사용되는데, [[미국]]에 대항해서 북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라는 뜻. 이런 6.25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한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문제가 되자 중국에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하여 중국군이 개입하기 이전까지는 '조선전쟁', 중국군이 개입하기 시작한 1950년 10월 말부터 종전까지를 '항미원조전쟁'으로 구별해서 불러야 한다는 학설이 주장되기 시작했다. 즉 6.25 전쟁의 개전 당시인 조선전쟁은 남북한 간의 [[내전]]에 불과하나, 미군을 주축으로 한 UN군의 진격으로 한만 국경에까지 도달하는 등 중국이 위협받기 시작하자 중국을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참전한 전쟁인 항미원조전쟁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항미원조전쟁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면 당시 중국군은 침략군이 되어버리며, 그렇다고 계속해서 밀고 나가자니 한국과의 외교 마찰이 발생하는 모순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중국은 해방 직후부터 조선인민군의 창설에 개입해왔다. 조선족 출신 사단을 파견하여 군정대학을 만들고 인민군을 육성했다. 6.25 개전 초기엔 조선족 사단이 인민군 안에 편성되어 남침하였고 중공군 개입 당시에도 그 길잡이가 되었다. 현재도 조선족 학교나 단체에서는 그것을 항미원조라고 가르치고 매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일본]]에서도 '조선전쟁(朝鮮戦争, ちょうせんせんそう)'으로 부르며, [[베트남]]에서도 '조선전쟁(Chiến tranh Triều Tiên, 戰爭朝鮮)'으로 부르고, [[대만]]/[[홍콩]]과 같은 [[중화권]]에서도 '조선전쟁(朝鮮戰爭)'으로 부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